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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회 개인전 (2012. 7. 4- 7. 10.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꿈틀거리는 풍경

쟝루이 포아트벵 (프랑스 평론가)

 김문식의 작품이 표현하고 있는 한국 현대 풍경화에는 무엇보다도 전통이 풍겨 나오고 있다. 그러나 특히 세월의 복잡한 흐름을 각종 역사적 분기점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서양 풍경화의 경향과는 달리 한국 풍경화는 전통의 기저를 파고 들어 그 내면을 표출하고 있다. 김문식은 서로 다른 전통적 이미지를 현대 시점에 채용하되 역사적 유산의 익숙한 풍경을 심층적으로 보수하고 있다. 단순한 듯한 전통적 터치들이 창조적인 손길을 통하여 현대적 상생으로 전환되어 전통과 현실성의 절묘한 합성이 이루어진다. 중국과 한국 회화에서 가장 고귀한 장르로 인식되고 있는 풍경화는 동양 문화의 소우주와 대우주의 가장 심도 깊은 관계, 나아가서 인간과 세계의 조화를 그려내는 미술이다.

 서양인들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중시한다. 그래서 그들은 객관적인 근거라든지 시간적인 개념 등을 매우 중시한다. 한편 동양 사람들은 정적이고 직관적인 사고를 중시한다. 그래서 동양인들은 사물 내면에 숨겨진 이치라던가 좀 더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것에 관심을 가졌다. 동양의 풍경화와 서양의 풍경화에서 그들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동양은 풍경의 외형보다는 정신적인 면을 중시하였다. 서양은 풍경의 외형을 중시하여 완전한 표현과 묘사를 중시하였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그들의 사고와 일맥상통하여 그림에서도 역시 동양은 사물의 주관적인 면에 중점을 두었고, 서양은 사물의 객관적인 면에 중점을 두었다 말할 수 있겠다. 김문식의 풍경화는 동양적 인간과 세상의 내면적 관계의 변천을 담아내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인간과 세상의 관계 변천사 탐구는 자연의 모습이 어떠한 형태와 특성으로 전통이라는 인간의 자취에 반영되었는지 모색하는 작업에 해당한다. 작가는 자연의 변천 또한 인간의 변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인간이 집을 짓고, 길을 내고, 배와 사원을 건설해 가는 변천사에 따라서 자연도 함께 그 모습을 바꾸게 된다. 이에 자연은 인간의 현실 변화뿐 아니라 인식 변화에 함께 변화한다. 이러한 기준이 바탕이 된 그의 화풍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부단히 작가의 내면과 자연에 대한 생명감정을 지속적으로 담고 있다. 물론 자연에 대한 인간의 느낌은 각기 다르며, 느낌의 실제 또한 인간의 생활 역사와 환경의 변화에 복잡하게 얽혀져 있다. 김문식은 이러한 느낌의 다원성을 인간과 환경 관계의 다원성과 연결하여 해석하고자 하였으며, 변화무쌍한 자연의 질곡을 화폭에 구현하고자 하였다.

 나무는 전통 풍경화에서 빠질 수 없는 소재 중의 하나이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데 각 풍경에서 극히 다른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 김문식 작품에서의 나무는 거의 모든 풍경의 중심이 되면서도 각 풍경에서 서로 다른 족적을 가지고 있다.  데뷔 시절의 작품에서는 매우 커다란 나무 하나가 우뚝 솟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소인국에 나타난 거인처럼 구도되어 풍경의 중심이 되어 있다.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나무는 자연에 합류하지 않고 무언가를 독보적으로 의미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인간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인간 이상의 그 무언가를 대변하면서 여행 가방이 필요 없는 여행자의 모습 같기도 하다. 1990년에 제작한 한 작품을 보면 그 전 작품들에서는 보기가 드물었던 사람의 모습이 나타난다. 길 위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매우 작게 그려져 있는데, 그 옆에 하나의 거대한 소나무가 거의 수평으로 뻗어 있다. 어느 지점에서 뻗어 나온 소나무인지는 보이지가 않는다. 마치 무(無)에서 분출되어 길을 걷는 두 사람에게 그늘을 선사하고자 하는 느낌을 줌과 동시에, 두 사람에게 무언가 경계심을 주고자 하는 느낌이다. 어쨌든 그 몸통의 형상을 볼 때, 나무는 두 사람보다 우위에 있는 신비로운 요소로 표현되었음은 틀림없다. 그 웅장함은 사람뿐 아니라 산 또한 압도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작가가 추구하고자 한 물질을 뛰어 넘는 정신성을 중심으로 더욱 깊이 분석해 보면, 나무는 몸통과 가지를 함께 가지고 있다. 여기서 몸통은 자연을 반영하고 있으며, 가지는 인간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한다. 즉 김문식의 작품에서의 나무는 두 가지 족적을 가지고 있다. 무(無)에서 유(有)로 창조된 자연을 암시하는 몸통, 환경에 변화하는 인간을 암시하는 빗물에 자라나고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 이 점이 바로 김문식의 작품 세계가 추구하는 다원성이다. 건물, 가옥, 교량, 사원이 인간이 세상에 남기는 발자취를 대변한다면, 나무는 인간이 자연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명제를 표명하고 있다. 이렇듯 김문식은 전통적 관념으로서 정신적 내면 세계와 물질 자체에 목적 의식을 훨씬 많이 부여 하는 현대적 미의식을 어떻게 조화 시키느냐 하는 현대 한국화가 처한 고민을 끊임없이 갈등하여 왔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인간과 자연의 관계 탐구에 매진해 왔다.

 김문식은 자연의 힘에 대한 인간의 감동을 표현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세월이 흐름에 따른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인식 변화를 화폭에 옮기고자 하였다. 흐르는 세상 속의 시상을 종이에 담고자 하였다. 이러한 작품들은 시간의 삶 속에서 소재형태에 대한 선의 응축과 공간 여백의 조화를 모색하여 자연에 대한 시각 변화를 시도하는 화면구성이 나타나는 작업이다. 자연의 표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세월의 속도에 대한 자기상실에 대항하는 자연에 대한 인간 독백으로 표현하고 있다. 김문식이 생각하는 현대성을 전통에 깊이 천착하면서 발현되는 압축 미에서 그 특질을 찾을 수 있는데, 필획처럼 뻗어나간 묵선의 길은 세월의 빠름을 발현하고 있는 듯하고, 회색 하늘은 세월의 무게를 담고 있는 듯하며, 생동감 있는 나무는 현대 시점에서 인간이 세월과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하는 듯하다. 풍경의 생동감이 더욱 강조된 2000년대의 그의 화면들은 90년대 이후 궁극적으로 심화된 세월과의 지속적인 소통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산수가 삶의 모습으로 화면의 초점이 되어 작품에 도입된 묵선과 묵흔 등으로 처리된 풍경의 각 요소들은 세월의 방향, 속도감, 인간의 현 시점에서 바라보는 과거에 대한 인간의 감흥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김문식의 화의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를 볼 수 있기 위해서는 주관적 시각을 넘어서 비교 인식 체계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암채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색채를 띄고 있던 풍경은 마치 끝없는 겨울을 맞이한 듯 잿빛으로 가득하고 금빛 단풍나무들은 세월이 지나 흰색과 회색의 겨울나무로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 적막함의 요체는 막연한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현실과 현실 너머를 연결해 주는 거리감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본다. 현실이면서, 사유의 세계, 현재이면서 동시에 아득한 과거의 시산이 부단히 왕복하면서 독특한 허무감을 근간에 두고 있다. 나아가, 이 허무함에는 모종의 불안의 빛이 서려 있기도 한데, 상세히 보면 위험이나 재난을 암시하는 소재는 전혀 없다. 김문식은 이렇게‘비어 있음’, 즉 공허감을 구사한 것이며 산수의 공허함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은 것과의 간극에 명멸하는 어떤 모습으로 해석된다.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존재하지 않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세계에 대한 인식의 통렬한 자기성찰을 동반한 것이라고 본다.

 현재 한국 화가들의 그림의 성격이 제도화된 전통성을 미적 차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반면, 김문식은 여러 가지로 굴절되고 폐색되어 가리워진 전통성과 한국성의 참 모습을 들추어 내는 작업을 선결 과제로 삼고 있다. 전통적인 자연의 체취를 사유적 회화 언어로 느껴볼 수 있게 하고, 주제를 더욱 민속적인 형식의 여과장치를 통과하게 하는 과정의 필요성을 주창하고 있다. 서양인인 본인으로서 말할 수 있건대, 그의 작품에서는 바로 이와 같은 심력이 읽혀진다. 작가적 심력이 추출된 표정을 담은 그의 풍경화야말로 실경 산수화가 내포한 미적 진실인지 모른다. 자연의 겉모습이 아닌 내적 모습, 즉 산, 강, 나무를 생성하고 변화하는 본성인 자연의 창조적 생동성을 지닌 그림을 추구하는 진실의 이미지로서의 산수화야말로 서양 관객의 감동을 자아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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