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회 개인전 (1990. 4. 17 - 22. 서울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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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식-과수원의봄-1990-O10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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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식-남설악-1990-O10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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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있는 운필과 대범한 시각

 

미술평론가       오  광  수  (전 국립현대 미술 관장)

  싸리빗을 연상시키는 쭉쭉 뻗는 필선의 묘법(妙法)과 현실경관을 대상(對象)으로 하는 소박한 실경산수(實景山水)로 이미 우리 눈에 익은 金文植이 4회째의 개인전을 열고 있다.

  80년대 초 東亞美術祭의 入選과 東亞美術賞 受賞을 통해 속도감(速度感)과 그것들이 화면 가득히 덮혀가면서 대상을 묘출해주는 특이한 방법으로 인해 신선한 인상을 던져준바 있다.  대체로 동양화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모필의 사용과 거기서 결과 되는 운필의 묘라고 할 수 있다. 자연대상을 선의 주름살로 묘파해준 준법(皴法)이 발달한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김문식의 운필은 꼬리가 길게 쭉쭉 뻗어나면서 빽빽한 숲 속을 연상시키는 전면공간에의 확산으로, 시원하면서도 자욱한 눈 맛(이 말은 崔淳雨 선생이 즐겨 썼던 말이다)을 주고 있다. 그것이 빽빽하게 밀집되면서도 답답하지 않고 은은한 깊이감을 동반하는 것은 거침없이 뻗는 속도감과 그 속도감에 얹힌 재바른 투시감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거의 단숨에 처리한 것 같은 풍경이면서도 근경에서 원경으로 이어지는 투시(透視)의 맛은 역시 선(線)의 경쾌한 리듬과 그것의 강약에 의해 조절되는 대기의 포착에서 얻어진다.

  그가 대상으로 하고 있는 내용은 우리주변의 풍경들이다. 여러 풍경적 단면들을 따와서 하나의 사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케치풍의 실사이다. 그것도 빼어난 시점이라든가 구도의 특이성에 의한 선택의 까다로움이 없는 그저 평범한 자연의 단면들이다.

  말하자면 어디고 맞닦드린 풍경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하면에 가져오고 있는 인상이다.  스케치풍이란 말이 나왔지만, 어쩌면 그의 속도 빠른 운필(運筆)에 가장 상응(相應)되는 것이 이 같은 즉흥적인 대상의 선택이 아닌 가 본다.

 

  우리 주변의 자연경관이기 때문에 과거에 보아오던 산수풍의 관념 취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산과 수목은 물론이려니와 그 속에 점경되는 촌락이나 가옥도 스레트나 양기와 지붕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근대적인 구조물, 예컨대 기관차나 철교나 케이불카 같은 것도 거침없이 등장한다.  산수화에서는 아직도 금기시하는 현대적 풍물을 대담하게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농촌풍경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그가 농촌출신이기 때문에 이끌리는 소재적 취향 때문이리라 본다.  88년과 89년의 작품들과 이번 90년의 작품들을 비교해 보았을 때  커다란 변화 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는다.  여전히 날카로운 운필의 구사와 그것의 리듬에 의해 조절되고 마무리 되는 자연경관이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올수록 점차 두드러지고 있는 것은 운필에 못지 않는 선염의 기법과 때때로 설정되는 대담한 여백, 그리고 세부에 집착하지 않는 시각의 대범(大汎)함이다.  동시에 먹이 갖는 유현한 기운이 화면 전체를 여운 있게 감싸고 있음이다.  이점은 그의 기본적인 바탕은 그대로 지속하면서도 부분적으로 자기 완숙을 기해가는 증좌(證左)라고 볼 수 있으며, 그의 최근 왕성한 제작에 견주어 볼 때 충분히 가능한 현상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