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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회 개인전 (1994년 6월 1일 - 14일. 백상갤러리)

눈과 경험, 필법의 새 국면: 김문식의 근작 수묵담채들

 

김 복영 (미술평론가, 홍익대교수)

 김문식의 수묵담채에 의한 수목(樹木)의 그림들은 그가 그간 일곱 번째의 개인전을 펼쳐 오면서 어느덧 하나의 독자적인 필법을 발전시키는 데 이른 것으로 생각된다. 86년 첫 개인전에서 그 서두를 일군 후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에 이르러 본격적인 모색을 시도한 것으로 여겨진다.  금번 개인전은 최근 몇 년간 그가 천착해 온 수묵양식의 중간 결산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일단의 예를 서술해 보자면 이러하다, 가령 근경에는 두 그루의 나무들이 화면 좌측에 가늘고 쭉쭉 뻗은 붓질로 그려져 있는 데 그 아래로는 작은 시내가 지나고 있다. 나무와 시내 사이에 천수답으로 생각되는 논들과 논뚝으로 굽어지는 여러 갈래의 굴곡들이 앞서 두 구루의 나무들을 받쳐 주는 바탕의 역할을 하면서  펼쳐진다. 시내  건너편에는 작은 언덕이 있고 언덕으로 오르는 오솔길 주변에는 작은 언덕이 있고 언덕으로 오르는 오솔길 주변에는 근경을 이루는 나무숲이 화면의 주요 모티브로서의 역할을 철저히 과시하고 있다 소나무로 생각되는 수목들이 크고 작은 키들을 그러데이션으로 해서 울타리처럼 좌측 아래 둑으로 늘어뜨린다. 늘어진 길고 작은 키의 나무 가지들이 서로 얽히면서 숲의 내면공간을 만들며 중경의 분위기를 설정하기에 이른다. 바로 중경의 공간을 수식하면서 작은 천수답들의 언덕지평 저쪽 끝에 산촌가옥 한 채가 얼굴을 살짝 내어민다. 세필로 스레트 지붕의 줄기를 그린 밝은 자태를 한 가옥 뒤편으로 원경의 산이자 대담한 농채의 발묵이 질풍처럼 뒤덮인다. 마치 근경과 중경의 강인한 세필의 필치들로 채워진 분위기를 보상해 주는 듯 무겁고 어두운  묵필이 병풍처럼 포치된다. 전체의 분위기는 요컨대 먹의 밝음과 어두움 깔깔함과 부드러움, 날카로움과 다소의 둔탁함 등 대조적인 표정들의 화해에 의해 기초가 잡히어지지만 화면을 지배하는 가시적 효과는 쭉쭉 뻗고 있는 가냘프지만 강세가 내제된 갈필의 운필표정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특징적인 정경의 묘사는 년 전에 제작된 (자운영 꽃필 때)를 모델로 한 것이지만 이번 출품작들에서도 일반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것이기에 그의 근작의  상황을 짚어볼 수 있는 모범적 사례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근작들에서는 주제들이 이러한 패러다임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변형구조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언덕과 개울, 그리고 마을의 정경이 펼쳐지는가 하면, 밭고랑 수목들 사이로 휘어지는 사잇길, 먼산, 돌아가는 언덕길, 들밭, 수목이 서있는 마을입구가 작품의 기본 범례들 속에서 여러 가지 자태를 구성해 낸다. 무엇보다 그의 근작들의 핵심을 이루는 부분은 주 모티브로서의 수목의 필법과 이 필법이 내재하고 있는 운필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는 수목들의 이러저러한 자태를 그리기 위해 언덕과 마을, 밭들과 시냇물을 그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수목들은 뼈대만 앙상하게  그려 진데서 부터 커다란 잎새 덩치를 머리에 이고 있는 풍성한 자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것들이며 꽂꽂하게 세워진 것들로부터 마주하고 휘어진  것들, 하늘을 향해 선 것들과 비탈에 기대어 밑으로 가라앉듯 내리뻗은 것들이 하나의 화면에서 드라마를 연출하듯이 공간설정을 이루어낸다. 그 어떠한 경우이건 간에 그의 화면을 구성하는 주요요인은 필법의 새로운 국면을 보이고자 한다는 데 모아진다. 일체 고전적 준법을 피하고자 일부러 산악이나 암석 나아가서는 구릉 따위의 모티브를 기피하면서 자연의 수목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운필의 격조를 모색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화면의 여백개념마저 회피하듯 우리의 일상경험 저 넘어의 세계에 관해서는 심도 있게 보살피지 않고 있다.

 

  이러한 몇 가지 특징적 사실은 그의 작품들이 전통산수의 필법들을 버리고 그 자신의 (눈)과 (경험)으로부터 세계를 바라보고자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실 눈과 경험은 작가가 세계를 살피면서 작품으로 이행해 들어가는 통로이지만 기존의 눈과 경험을 고려하든가 전혀 그  자신의 것들로부터 시작하든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선택사항의 것이기도 하다.  김문식의 경우는 후자의 선택을 선호하고 있어 보인다. 그에게  있어서는 어떠한 기존의 필법 적 잔흔을 읽어내기가 어려울 만큼 그 자신의 방식에 따른 운필의 맵시를 천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근자의 새로운 필법의 실험이 광범위하게 시도되면서 필법을  둘러싸고 운위될 수 있는 회화의 (정신)을 모색하는 풍조가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김문식의 경우 또한 이러한 노선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음이 분명해진다. 그러나 그의 경우는 흔히 보아온 (사경)이나 (진경)의 풍향을 깊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이 또한 특징이다. 자연의 '실사'에 경도하거나 전통적인 자연관의 잔재를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다. 따라서 그의 근작들은 필자가 언급하고자 하는 그 자신의 (눈과 경험)을 강조하는 이외의 어떠한 양식이나 교조에 아직은 연루되어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그가 그러나 이러한 그 자신의 (방법론)의 천착에 이미 도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 보다는 이러한 방향을 올바르게 천착하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금번 개인전은 그래서 요컨대 그가 지금가지 일구어온 노선을  중간 결산해 보이고자 한다는 데 뜻이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추이를  더욱 기대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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