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회 개인전 (1997. 6. 13 - 6. 20 조선일보 미술관)

현장의 감각과 영감에 바탕을 둔 수묵산수

 

 이 영 재(미술평론가)

  오늘날 우리 사회는 서구적 의미의 근대화가 밀려오면서 전통적인 여러 가치들이 급격하게 붕괴되고 있다. 근대화를 통해 서구적 합리주의와 실용주의가 우리의 기준가치를 변화시키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리 우려할 만한 사항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그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 전통의 맥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거나 점차 쇠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학술지나 전문잡지를 통해 포스트 모더니즘류의 문화가 풍미할 것 같은 서구사회도 막상 현지에서는 보다 광범위한 기반을 이루고 있는 것은 오히려 전통적 유산들이다. 언어나 매체를 통한 인식과 실제의 접근을 통한 인식 사이에는 종종 상당한 차이를 접하게 될 때 자칫 허구적 외국영화 한편을 보고 판단하는 류의 우를 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새로운 문화의 패러다임을 창조해내는 서구사회의 문화적 양상에는 한 가지 명료한 특징이 있게 된다. 새로움을 창조하면서도 동시에 옛것을 중시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문화는 점점 다양성을 띄게 된다는 사실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우려되는 점은 급격한 변화 속에서 늘 새로운 변화와 흐름은 과거의 것들을 전적으로 흡수해 버리는데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늘 새로운 주류를 간파하는데 혈안이 돼있고 기존문화가 주류에서 벗어낫다 하면 곧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그 결과 우리문화는 새로운 주류가 창조되거나 형성되어도 그로부터 두터운 문화적 다양성이 형성되기 보다는 여전히 획일성을 면치 못하는 구조로 맴돌기를 반복하게 된다. 이러한 특징은 미술계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근자에 들어서 우리 미술계를 보면 과거에 비해 급격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획일적이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아직도 우리는 미술에서 어떤 양식을 선택할 수 있다 기 보다는 오히려 특정 양식의 탐닉을 강요받고 있다.

 

  그와 같은 급격한 변화 속에서 점차 그 명맥이 사라지고 있는  것들 중 하나로서 수묵산수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특히 수묵산수야말로 과거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에서 근대의 청전 이상범,  소정 변관식 등 소위 6대가에 이어져 온 우리의 가장 주류를 이루었던 전통미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급격한 전환기의 물결은 우리의 대표적 미술이었다고 할 수 있는 이 수묵산수마저도 점차 사라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추세에도 불구하고 김문식은 기금까지 줄기차게 수묵산수의 세계를 탐닉하여 왔다. 10여 차례의 개인전을 통해 이 작가는 줄기차게 우리의 산야, 나무와 숲, 시골마을 등 우리의 자연을 수묵으로서 보여주었다.  이러한 점은 최근 대다수의 주류  특히 전통 한국화마저도 서구적 화풍으로 변해가고 있는 시점에서 오히려 더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유가  아닌가 여겨지게 한다.

그의 그림은 비록 오늘의 주류는 아니라 할지라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획일성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며 그러한 의미에서보다 더 새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와 아울러 김문식의 수묵산수는 과거의 수묵산수와 견주어 볼 때 새로움의 요소를 많이 간직하고 있다. 그의 그림은 그 내면에는 나름대로 전통을 계승하면서 자신의 독특한 개성과  감각을 구현해 나가고자 하는 요소가 보이고 있다.

 

 김문식의 수묵산수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무엇보다도 이 작가는 미술평론가 김복영씨가 지적했듯이 "자신의 '눈' '경험'으로부터 세계를 보고자"하고 있다. 김문식은 전통적인 화법에 지나치게 얽매이고자 하기보다는 자유로운 자신의 느낌과 감흥이 창작의 주된 동인으로 작용한다. 때문에 그의 그림에서는 전통 산수에서는 볼 수 없었던 소재들도 종종 화면에 나타나며, 구도에 있어서도 전통적 삼원법 중 심원법이나 보감법으로 처리 스케일이 크고 과감한 구도가  나오기도 한다. 둘째로 그렇기 때문에 김문식의 그림은 과거 진경산수에서와 같은 절대적이고 영원한 형태로서의 산의 모습이나 극도의 주관적 소양을  강조한 문인화 풍의 남종 산수류와는 달리 자연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즉 그의 그림은 형이상학적이거나 주관적이기보다는 우리의 평범하고 상식적인 의미의 감각에 의해 접근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조선시대처럼 그림에서 엘리트적 문자향을 표출하고자 하기 보다는 가장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감각을 그는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김문식의 그림은 시골의 한적한 농가나 산골에 대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포근한 감정이 쉽게 표현되고 있다.  셋째로 김문식의 그림은 형상을 처리해 나가는데 있어서 전통적 준법이나 화법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전통에 얽매인 화법보다는 자신의 직관과 영감이 작업을 이끄는 주된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붓의 운용과 먹의 사용은 어디까지나 이작가의 영감과 감각으로부터 비롯되며, 그 속에서 자연의 감각은 오히려 더 짙게 배어나온다. 그러한 과정에서 그 자신이 인위적으로 자아내지는 않았지만 전통준법과는 다른 날카롭고 빠른 느낌의 독특한 준법이 보여지기도 한다.

 

  김문식의 그림에서 이와 같은 특징들은 이번 전시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산"을 주된 테마로 설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이 작가는 백두대간을 비롯 한국의 100여개의 산과 10여 차례 이상 외국의 산을 실사하여 현장사생을 수없이 하여왔다. 그만큼 이 작가는 작품에서 현장실사를 중시하고 있으며 현장에서의 감흥과 정취를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실사와 감각에 바탕을 둔 김문식의 작품세계는 점차 우리의 문화적 주체성이 모호해져 가고 있는 미술의 흐름에 비추어 보았을 때 역으로 오히려 더 우리 사회가 소중하게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김문식-솔바람따라-1997-O15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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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식-소백산운해-1997-O47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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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식-오솔길-1997-O15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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