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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세계(싸릿발 산수 반세기)

 

 

 

나무와 숲을 그리다

오늘도 마을 어귀의 큰 나무는 묵묵히 서있다. 풍성하게 어우러진 숲은 멋스러움이 더하고, 싸리나무 덤불속 야생 복숭아는 붉게 피어있다. 옛날에는 개 복숭아라고 홀대하며 관심 밖이었고, 익기도 전에 따먹던 개복숭아 꽃이 오늘따라 예쁘다. 야생의 개복숭아 꽃은 도원이 생각나게 하고 안견의 몽유도원도로 나를 이끈다.

이곳 고향마을의 나무와 숲은 40여년 전 동아미술제에 동아미술상(1984, 瑞林)을 받게 한 나무와 나무숲이다. 지금의 나를 있게한 주인공인 셈이다. 그 뒤로 나는 산과 들에 취해서 제멋대로 자란 야목(野木)을 좋아한다. 이리 얽히고 저리 뻗으며 꽃피는자생력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나는 이 척박한 틈에서 웃 자라나는 나무들과 싸리나무에서 강한 생명력을 보았고, 한국적 자생의멋과 토속미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후로 동아미술제 30주년 기념으로 제정된 초대작가상도, 나무숲을 다룬 산정(2004,山情)이란 작품으로 수상하게 되었다. 이러한 제작과정에서 돌출된 자유로운 필법은 미술평론가 오광수 선생과 김백균 교수는 작품평론을 통하여 싸릿발을 연상시키는 준법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나의 싸릿발 준법은 골필 위주의 산수화로연결되었고 나만의 실경회화로 발전 시키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림 산행

나는 조선일보사 월간 산에‘그림 산행’을 연재(1991-1995)하면서 산과 인연이 되었다. 5년간 산행기에 어울리게 산의 인상을 그리는 것이다. 화구를 들고 처음 그림 산행을 한 곳은 도봉산이다. 도봉산 입구에서 도봉서원과 천축사를 거쳐 마당바위까지 올랐다. 도봉산의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을 가까이 대하는 순간이었다. 웅장한 모습에 천축사가 잘 어울려져 있었다. 나는 이런 계기로 도봉산을 일년동안 구석구석 살피고 매달 4점씩 그렸다. 다른 모습의 도봉산이 50여점 쌓였다. 망월사, 회룡사, 우이암,우이령과 오봉, 사패산 등 사찰과 숨겨진 폭포가 주된 대상이었다.

그림 산행은 북한산으로 이어져 연재가 계속되었다. 북한산은 백운대, 인수봉, 만경봉이 삼각을 이룬다 하여 삼각산이라고도 한다. 삼각산에는 북한산성이 있으며 원효봉 의상봉 보현봉 등 수많은 암봉과 연계되어 있다. 나는 산성의 성곽과 산재한 문화재들, 그 유래를 하나하나 살피며 수많은 작품과 드로잉을 하게 되었다. 장축 그림인‘도봉산도’‘인수봉도’‘노적봉도’등이 제작되었고, 횡권의‘우이령도’는 우이령을 사이에 둔 북한산과 도봉산 30여 리를 그린 대작이다. 우이령 초입에 있었던 화성 겸재 정선 영면의 장소에서 얻은 영감의 작품이다. 이를 계기로 전국의 명산그림산행은 지속되어 수많은 산을 오르게 되었다. 젊음의 열정으로 30여년 지속한 그림 산행은 건강과 함께 산수화 제작에 큰 자산이 되었다.

1997년 조선일보사후원으로 조선일보미술관에서‘그림 산행’초대전을 가졌다. 2016년에는 도봉산과 북한산의 명소를 담아 도봉산첩, 북한산첩, 설악산첩, 명승첩 등을 만들고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수류화개 화첩전시회를 열었다.

 

 

 

물과 폭포에 마음을 두다.

산수에서의 물은 도(道)의 의미가 있다. 물은 높은데서 낮은 데로 흐르고 막히면 돌아간다. 마른 곳은 적셔주고 비운 곳은 채우고 채우면 또 흐른다. 심강무성(深江無聲), 큰 강이 되면 소리 없이 흘러 바다로 간다. 물은 무궁한 인생의 철학요소와 산수의 미학적 이론과 규율이 존재한다. 물에는 잔잔한 물이 있는가 하면 흐르는 시냇물과 계류가 있고 소용돌이치는 소(沼)와 연(淵)이 있으며 시원스럽게 쏟아지는 폭포가 있다.

폭포는 세속의 때를 씻어주고 삶에 청량한 기운을 북돋아준다. 그러나 물의 표현은 의외로 쉬운 듯, 어렵고 까다롭다. 물의 모습이 단순한 것 같지만 장소마다 흐름과 표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다양한 물의 표정을 담기 위하여 계곡과 폭포를 많이 찾았고 물의 선과 음영표현에 심혈을 기울였다. 기억에 남는 폭포는 설악산의 대승폭포와 토왕성폭포, 두타산 용추, 내연산 삼용추, 철원의 직탕폭포와 삼부연, 제주의 여러 폭포를 들 수 있다. 그 외 금강산 비룡폭과 구룡폭포, 백두산 장백폭포 등이 있으며 중국의 회화사에 나오는 오악의 폭포, 미국 나이아가라 폭포 등은 우리나라 산수에서는 볼 수 없는 지형적인 요소와 규모면에 있어 상상의 폭을 넓일 수 있었다.

나는 물과 폭포를 통하여 울려 퍼지는 산수의 습윤한 미감과 여백을 살리고, 현대 산수로 연결하는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며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산수인물

산수화 속의 인물은 아주 작은 인물이다. 얼굴의 모습은 안 보이지만 그 모습과 형태에서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며 어디를 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산수 인물은 고요하다고 생각하면 고요하고, 적막하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적막하다. 쓸쓸하게도 외롭게도 만든다. 그러나 그곳엔 맑고 밝음이 있으며 아늑한 평화가 있다. 산수 속 인물은 산수의 여운과 여백을 깊게 만들고 작품 속에서 많은 이야기와 상상을 낳게 한다.

나는 산수 인물을 많이 등장시키고 있다. 생명력 있는 정신적 깊이를 나타내기 위해서다. 한가히 산속을 걷는 등산객, 길모퉁이를 무심히 걷고 있는 노인,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는 아이들, 지게를 지고 가는 투박한 농사꾼 등 흔히 접하는 인물들이다. 아주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지만 수차례 또는 수십 차례 드로잉을 한다. 그 속에서 기이한 모습과 질박한 표정이 표출될 때까지 그려본다. 순박하고 어눌한 모습을 찾아 산수경 속으로 그려 넣고 나의 모습 인양 웃고 때론 손뼉을 치며 즐거워한다. 그리움이 표출되는 순간이다. 산수 인물은 나의 추억이다. 그리고 이 시대의 풍속이며 배경이라 할 수 있다.

 

 

비해당 안평대군과 현동자 안견선생 현창사업

현동자 안견선생의 출생지는 충남 서산 지곡이다. 안상환(前 서산시의원)씨가 소유하고 있는“죽계사적”에 의거하여 학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서산시는 안견의 출생지로 추정되는 지곡에 안견기념관(1989)을 건립하고 기념사업을 하고 있다. 중앙화단에서 활동하는 서산출신인 나에게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현동자 안견선생과 비해당 안평대군의 현창사업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단법인 안평안견 현창사업회는 안평대군과 안견의 예술혼을 기리는 학술대회와 문화예술제(2001~현재)를 매년 진행하며 안평안견예술정신전, 청년작가전, 안평안견창작상특별전 등을 해오고 있다. 안평안견 문화운동으로 현재의 무계원(종로구 부암동)이 복원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문화운동은 언제인가 몽유도원도가 반환되는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한다. 한사람을 존경하고 공경하다 보면 어느 덧 그분을 닮아 간다고 한다.

동기 감동(動機 感動)! 좋은 작가가 되고자 꿈을 꾸다 보면 조금이라도 닮아 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나는 이 두 분을 현창하게 됨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나무와 숲에서 먼 산을 보다

동양화의 근간을 이루었던 산수화는 현대라는 예술사조의 물결 속에서 많은 시련과 갈등을 격고 있다. 현동자 안견과 겸재 정선 등 많은 작가들이 계승 발전시켰던 한국 고유의 산수화는 근대의 청전 이상범, 소정 변관식 이후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50여년 동안 침체가 계속되고 있다. 이 시대에 누구인가 중심을 잡고 발전시키며 미래로 연결하는 징검다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수화는 짧은 시간에 완성되는 장르가 아니다. 많은 세월 속에 개성이 완숙되고 자아가 형성되는 예술세계이다.

나는 화구를 메고 전국 명승지를 탐방하며 작품을 그려 온 지도 반세기가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20대에는 선인들의 임모수업에 매진하였고 30대에 나무와 숲에서 정체성을 찾으려 노력하였으며, 40대에는 그림산행을 통하여 많은 산은 오르고 심오한 산수의 변화를 익히며 50대에는 산의 생명력을 얻기 위하여 물을 마음에 담으려 하였다. 60대에는 그림속에 산수 인물을 등장시키고 그를 통하여 산수의 깊이와 사유의 공간을 얻고자 하였다. 많은 방황도 보이고 부끄러움도 보이는 흔적과 작품들이 너무 즐비하다. 대나무가 스스로 마디를 만들며 자라나듯이 지금까지 달려온 길을 뒤 돌아본다.

세월은 나에게도 고희(古稀)라는 세월을 비껴가지 않고 있다. 많은 사람은 소유로 행복을 추구하지만 나는 나만의 작은 그림세계로 행복을 찾아본다. 어떤 모습으로 남겨질까, 나도 궁금해진다.

 

 

 

 

2020 庚子 4

八中山人 金 文 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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