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첩畵帖) 소개

화첩은 그림을 모아 책처럼 엮은 표장방법의 하나이며 화책이라고도 한다
그림의 보관과 감상이 편리하며 어깨넓이에서 화첩을 보거나 바닥 또는 벽에 기대어 놓고 볼 수 있는 움직이는 미술관이라 할 수 있다. 수장자의 취향에 따라 작가별 소재별 등으로 엮기도 하고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상태로 꾸며져 그림을 그려 넣는 방법도 있다. 대체로 한 화첩에  10점에서 30점정도 그림이 들어가며 조선시대에 문인들이 즐겨 사용하였다.
개인화첩의 경우 대부분 동일주제와 동일화법으로 이루어져있어 그 작가의 작품경향과 특징을 파악하고 연구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많은 국가적 혼란 속에서도 한 가문의 가보나 애장품으로 전해져 내려와 우리회화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화첩은 진경산수화의 화성 겸재 정선이 으뜸이다. 36세 금강산 유람하고 풍악도첩을 그리고  이듬해에 해악전신첩(37세)을 그려 그의 화명을 떨치었다. 58세에 청하(포항)현감 재직 시 교남명승첩을 시작으로 60대에 접어들면서 화첩을 많이 제작하였다.
청풍, 단양, 영춘, 영월 4군첩(62세), 한강주변을 그린 경교명승첩(66세), 임진강의 연강임술첩(67세), 인왕산 장동팔경첩(70세), 금강산의 해악전신첩(72세), 인왕제색도와 함께 경교명승첩 하권을 76세에 제작하였다.
단원 김홍도는 서당도나 씨름도 등 명품의 풍속화첩 보물527호를 남기고 정조의 명에 따라 금강산과 동해안 명승지를 그린 해산첩(44세)은 겸재와 또 다른  진경산수의 명 화첩을 남겼다. 혜원 신윤복의 양반사회의 은밀한 생활상을 그린 풍속전신첩은 국보135호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대표적 화첩으로는 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강세황의 “송도기행첩”, 안견의“사계산수도화첩”, 정선의 “장동팔경첩”, 김홍도의 “풍속도화첩”, 임희수의“초상화첩”등과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있는 정선의 “경외명승첩”, 신윤복의 “혜원 풍속도첩”등이 있다. 특수한 화첩으론 동궐도로 국보249호(작자미상)가 있다.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렸으며 16개의 화첩( 273㎝×548㎝)으로 구성된 대작이다.

 

 화첩은 작가의 사상과 마음을 표현 할 수 있는 작지만 넓은 공간이다.그동안 화첩은 한 작가의 주된 작품과는 격이 떨어지고 거리가 있는 부장품으로만 생각했다. 화첩은 작가마다 자기의 이상과 철학을 충분히 펼쳐지고 있으며 오히려 작품세계를 풍요롭게 하고 있음을 알았다.좋은 화첩은 밑 그림의 하도를 잡고 수많은 실험 속에 주옥같은 작품만 골라 만든 경우가 많다.겸재 정선과 강세황, 김홍도 등을 면밀히 보고동시대에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중국의 명.청대의 심주, 문징명, 석도, 팔대산인, 동기창 등 명 화첩을 차분히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